단편소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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暑 더울 서
뜨겁게 내려쬐는 햇볕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밖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한 방울 두 방울 주르륵주르륵 얼른 대청으로 올라와 부채질을 선선히 한다 그래도 창이 남으로 나있어 바람이 시원하게 부니 한결 살맛 난다 이런 날씨에 시원한 바람 부는 그늘에서 수박이나 먹으면 그게 보약이지 보약이야 집 안 그늘에 앉아서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약간의 미안함이 생긴다 ' 해 밑에서 일하는 놈들은 덥겠군 '
2021.08.23 -
燥 마를 조
내가 태어날 때 위로는 하늘이 보였고 아래로는 나무가 보였다 땅 대신에 내 형제자매들을 들어주던 친구가 나무였다 날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날 수 없을 때는 그저 이 나무에서 기어다닐뿐이었다 그러다가 날갯짓을 익히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어도 이 나무는 떠나지 않았는데 불이 점점 다가온다 이미 다른 나무들은 화마에 휩싸여 녹아내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지저귀는 것뿐... 온 세상이 불이다 온 세상이 마른다
2021.08.22 -
崔 높을 최, 클 최
그저 이 나무에서 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 일만 하거나 땅에 떨어져있는 곡식 알갱이를 쪼아대는 일이 내 목표였다면 힘들게 날개짓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날갯짓을 못하던 둥지 안에서부터 저 높은 창공을 눈에 담은 게 내 죄라면 죄 일수도 황금빛으로 물든 밭을 보며 눈독 들이던 형제들은 푸른 하늘과 하얀 태산만을 바라보던 나를 싫어했고 멀리했고 무서워했다 어린 날에는 그런 배척이 또 무서워서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 같이 다녀보고 농부들이 나타나면 같이 숨어도 보고 비가 오면 큰 나무 밑에 피해도 보고 그런 것도 소소한 재미는 있었지만 결국 눈에 들어오는건 푸른 하늘과 그 아래 하얀 산 황금색의 곡식 낱알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백 번의 날갯짓을 통해 그저 올라가고플 뿐 새 위의 산은..
2021.07.22 -
憲 법 헌
일이라는 게 말이여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당연히 해야하는거 아니겠어? 아니 나도 당연히 알고 있는 말이긴 헌디 그래서 나도 매사에 열심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래도 몸이라는 게 움직이면 피로가 쌓이는데 어떻게 계속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지 특히나 이런 땡볕에서 일을 하면은 땀도 억수로 쏟아지고 목도 칼칼하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쓰러진다 이 말이여 그래서 나무 아래에서 목 좀 축이면서 앉아있었더니 아뿔싸 집 안 주인님 눈초리 좀 보소 마음씨가 영~ 글렀어 아주 아주 그냥 자기 말이 법이여 법! --------------------------------------- '21.07.17일 제헌절을 맞이하여
2021.07.17 -
鍛 불릴 단
땅 땅 땅 우리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게 대장간이 있다 어릴 땐 신기하게 보면서 구경도 하고 그랬다가 크고 나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가 공부하기 싫어서 학원을 째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날 목적지가 있어서 나온 게 아니라 갈 곳도 없이 동네 한 바퀴를 하는데 땅 땅 땅 잊고 있던 소리가 들린다 일정한 박자로 들려오는 소리 홀린 듯이 가서 쇠가 맞고 있는 것을 쳐다보다가 장인과 눈이 마주쳤다가 바로 다시 시작되는 단련 땅 땅 땅 장인에게 단련되던 쇠만을 하염없이 보다가 학원으로 돌아가 책을 펴고 쇠가 된 것처럼 스스로를 두드린다 땅 땅 땅
2021.07.15 -
惡 악할 악, 미워할 오
'저 놈만 없으면....' 나도 중학교 때까지는 천재는 좀 그렇고 영재라고, 신동이라고 칭찬받으면서 살았는데 큰 도시 고등학교로 진학하니 수학도 국어도 영어도 만년 2등이다. 차라리 1등이 공부만 하고 싸가지 없는 애면 속이나 편한데 체육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밝고 차라리 2등 대신 3,4등 정도면 그냥 공부 잘하는 느낌 받으면서 기분 좋게 살 수 있을 텐데 학원도 평범한 학원에 남들 다 보는 책으로 공부하고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왜 늘 1등을 놓치지 않는지.. 2등의 마음은 악해지고 1등을 미워하게 된다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