細 가늘, 미미할 세
2021. 6. 25. 10:49ㆍ단편소설
땅은 몇 천년 전부터 조선의 땅이었으나
그 주인은 이미 바다 건너 사람들의 것으로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었다
땅에서 난 벼를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 땅마저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
그래도 숨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며
큰 맘먹지 말고 조용히 있자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나무라며 집 안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모조리 챙겨서 북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 쪽에도 동조할 수 없이 화는 나지만 큰 용기는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태어난 곳을 어찌 떠나냐는 말만
입 안에서 삼킨 채 애꿎은 담배 연기만 입 밖으로 내보낸다
우리의 것임을 표시하기 위해 밭을 둘러싼 줄은
가늘고 미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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